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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온 길

어려운 사람들에게 따뜻한 밥 주시던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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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조회 51회 작성일20-01-31 0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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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잖고, 마음씨 좋은 어르신들을 보면 내 어린 시절 할아버지, 아버지가 생각난다. 지금도 살면서 가장 좋았던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 어린 시절이다. 우리 아버지도 좋은 분이었지만 특히나 할아버지로부터 배웠던 좋은 기억이 많다.

나는 1964년 영산 영월신 씨 집성촌인 나주시 왕곡면 장산마을에서 3남4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아들로는 내가 막내였다. 어릴 적 우리 집은 열 댓 마지기의 농사를 짓는, 그때만 해도 중농 집안쯤은 됐다. 일꾼도 한 명이 있었다. 초가집은 서너 칸은 됐지만 어린 나는 주로 일꾼들이나 손님들이 자는 사랑방에서 잤다. 머슴들이 자는 그 방은 집에서 키우는 소에 먹일 소죽을 쑤는 방이라서 아랫목이 항상 뜨끈뜨끈했다. 그 때는 모두가 어렵게 사는 시절이어서 그런지 우리 집에서 일했던 분들이 지금도 이웃면에 살고 계시지만 나를 보면 반갑게 머슴 살다시피 했던 옛날 얘기를 꺼낸다.

 

우리 할아버지는 유학자도, 한학자도 아니셨고 넉넉한 형편은 아니었지만 우리들을 그렇게 서당에 보내려고 애쓰셨다. 심지어는 없는 살림에 문간채에 서당 훈장을 들이고 마당에 서당을 여셨다. 덕분에 내 윗 형은 <명심보감>을 뗐다. 엄하기도 하셔서 서당을 빼먹은 날이면 형은 할아버지에게 빠뿌리로 한 대씩 얻어맞곤 했다. 그때만 해도 어려운 시절이라 마을에는 학교에 갈 형편이 안 되는 아이들이 많았다. 할아버지는 그런 아이들이 가여웠는지 열일곱, 열여덟 살 되는 아이들까지 다 데려와서 마당에서 한문을 배우게 하셨다.

 

 

내가 다섯 살 되던 무렵, 할아버지가 나를 당신 앞에 앉히시더니 다정하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가~ 개글 배우지 말고 우리글 배워라 잉" 서당 다니라는 얘기였다.

할아버지는 나를 서당에 보내려고 하셨지만 나는 서당에 가기 싫어서 할아버지를 피해 도망 다녔다. 다섯 살만 해도 벌써 내가 날쌔니까 할아버지는 도망가는 나를 잡지를 못하셨다. 손자를 서당에 보내려는 할아버지와 놀기에만 바빠 거기에서 도망치려는 손자의 한판 경주가 벌어졌다. 할아버지는 손자 사랑을 표현할 줄도 모르는 분이셨다. 어린 손자는 사탕이나 뭘 줘서 달래고 따뜻하게 안아주고 그래야 말을 들을 텐데…….

 

할아버지는 남한테 베푸는 것을 좋아하셨다. 좋아하신 것이 아니라 그냥 나누면서 함께 살았다. '사람이 왜 베풀어야 하는지?' '베풀면 뭐가 좋은지?' 그런 얘기는 하지 않으셨다. 그때는 마을마다 거지들이 많이 찾아왔는데 대개는 대문 옆에서 쪼그려 앉아 식은 밥을 감지덕지 얻어먹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할아버지는 한 번도 거지들이 밖에서 밥을 먹게 두지 않으셨다. 거지가 오면 우리를 불러 "애야 손님 오셨다. 이리 모셔라"며 꼭 방안에서 밥을 먹게 하셨다. 그리고는 당신이 드시려던 따뜻한 밥그릇을 걸인에게 주고 "아가! 식은 밥 있냐? 그러셨다.

 

할아버지가 거지에게 밥을 그릇째 주시면 우리 어머니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님, 한 술이라도 뜨시고 주세요, 복 달아나요." 밥상의 밥을 한술도 안 뜨고 주면 복이 달아난다는 얘기였다. 그래도 할아버지는 며느리 말에 대꾸도 않고 어김없이 거지에게 당신 밥을 한 술 떠 주셨다. 우리 할아버지는 걸인을 꼭 방안에 오게 해서 당신 밥을 덜어 주셨다. 한 번도 그러지 않으신 적이 없었다.

 

나는 할아버지가 어디 나가실 때면 꼭 쌀독에서 쌀을 퍼가지고 나가시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었다. 부모님이 집에 있는 것을 남에게 가져다주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다. 무슨 참판네, 무슨 부잣집처럼 재산이 남아서 베푸는 것이 아니라 없는 가운데서도 당신이 드실 것을 나누실 줄 아는 분들이셨다. 끊임없이 나누고 베푸는 집안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그렇게 대체로 인자하셨다. 내 앞가림만 생각하기보다는 남을 먼저 배려하는 그런 태도는 아무래도 할아버지에게 배웠던 그 유년시절의 기억에서 비롯되었던 것 같다. 평범하게 살지만 베풀고 인정 있었던, 할아버지의 그 음덕이 지금의 나를 만든 것 같다.

 

우리 아버지는 인심이 넉넉하고 외모가 시원한 멋진 분이었다.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않은 보통농사꾼인데도 외적으로 풍기는 모습은 살림이 넉넉하고 배운 듯한 풍채 좋은 분이셨다. 어머니 말씀이 "일할 때는 농군, 나갈 때는 신사" 그러셨다. 지도력도 있고, 사람들에게 잘해주는 호인 스타일이랄까. 어떤 어려움이 닥쳐도 쉽게 겁을 내지 않는, 담이 큰 분이셨다. 젊었을 적에는 농사일도 하시고 장사도 하고 다니시면서 매사에 자신만만하셨다고 한다.

그런데 당신 인생 중반 이후에는 8남매 자식들이 한창 커나가서 그랬는지 책임감이 무거우셔서 그랬는지 참 고된 삶을 사셨다. 그래서 나도 초등학교 때부터 아버지를 도왔다. 농약할 때는 약줄을 잡고 심부름을 하면서 아버지의 고생을 몸으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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